시편 전체를 볼 때 다윗은 특정 환경에 상관없이 모든 상황 가운데 하나님을 향한 노래와 시를 기록하였습니다.
시편86편을 기록한 당시 다윗의 정확한 상황은 시를 통해 알 수는 없지만 본문을 묵상하면 격동하는 다윗의 상황과 그의 심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다윗은 가난하고 궁핍했으며(1절) 구원이 필요했고(2절) 환난 날(7절)이라 여겨지는 상황이었습니다.
눈여겨 볼 것은 시편 86편을 읽어 내려갈 때 미묘하게 다윗의 심정이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시에서 나타나는 다윗의 심정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7절, 8~13절, 14~17절)
첫 번째 부분인 1~7절을 보면 다윗은 오롯이 자신의 상황과 감정, 기분에만 사로잡혀 있음을 보게 됩니다.
‘나는’, ‘내게’, ‘나를’ 와 같이 ‘나’를 나타는 말이 14번 등장합니다. 거의 매 절마다 하나님께 자신의 어려움을 드러내며 떼쓰듯이 매달려 요구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언뜻 보면 “하나님, 내가 이정도로 기도하고 열심인데, 당신이 선하시면 내 기도에 반드시 응답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는 느낌이 듭니다. 반은 협박으로, 반은 애걸복걸하는 것처럼 말합니다.
다윗에게는 그의 가난함이 해결되는 게 중요했고 기쁨을 누려야 하는 게 우선이었으며 상황이 나아지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8절부터 다윗의 고백이 달라집니다. 7절까지 반복해서 등장하는 ‘나’가 갑자기 사라지게 됩니다. ‘나’한테 집중했던 다윗이 어느새 하나님께 집중하게 된 것입니다. 온전히 하나님을 느끼며 그를 인정합니다.(8절) 찬양하며 영광을 돌립니다.(9~12절) 점차 기도를 이어가니 기도 중에 다윗 자신은 사라지고 하나님만 집중하게 됩니다. 어느새 그가 기도의 깊은 자리에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게 된 것입니다.
짧은 시임에도 드라마틱하게 변화하는 다윗의 감정이 느껴집니다.
다윗이 처음 기도를 시작할 때에는 오롯이 자기 상황과 기분에만 매몰되어 있었는데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다보니 어느새 자기 상황은 잊히고 점점 하나님에 대해 깊이 빠져들게 된 것입니다.
기도를 시작할 때에는 자기 문제에 사로잡혀 자기 문제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동안 하나님은 어느새 그의 시선을 다윗 자신이 아닌 하나님께로 옮겨가게 한 것입니다. 비록 그의 기도가 형편없고 자기중심적이라도 말입니다.
하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를 경험한 다윗의 기도는 14절에서 다시 한 번 미묘하게 바뀝니다.
자기 문제를 통해 삶의 새로운 사명을 발견한 것입니다. 1~7절 까지는 오로지 자기감정과 상황의 해소만을 위해 하나님을 찾았다고 한다면 14절부터는 다윗 자신의 문제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상황이 되기를 기도하게 됩니다.
여전히 하나님의 은총과 도움을 구하지만 그 목적과 이유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함으로 바뀝니다. 특히 원수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어 회개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구하는 기도로 변화하였습니다. 기도 중에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회복시키고 시선을 변화시켰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힘든 상황이 찾아오면 다윗과 비슷한 모습이 되곤 합니다. 이해하기 힘들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 앞에 매일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래서 불평으로 가득하고, 마음과 영혼이 짓눌린 채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됩니다.
기도한다고는 하지만 울컥하고 원망과 낙담하는 마음이 먼저 생깁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나님께 기도하다보면 어느새 하나님은 기도의 깊은 경지 속에서 우리를 진지하게 만나주십니다.
마치 부모가 어린 자녀의 손에 쥐어진 위험한 것을 조심스레 빼앗고 부모의 품에 안아주는 것처럼 하나님은 문제에 빼앗겼던 우리 영혼의 시선을 조심스레 거두셔서 하나님께로 향하도록 옮겨주십니다.
내 마음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던 문제들을 천천히 치우시고 그 자리에 임재해주십니다.
비록 내 상황이 당장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다 할지라도 원망과 낙담으로 시작했던 마음이 감사와 찬양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은 나약하고 가냘픈 기도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깊은 교제로 이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의 상태가 어떠하든 그의 모든 것을 용납하시고 받아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의 용납하심은 항상 기도하는 자와 깊은 교제를 나누는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삶의 문제의 본질은 내게 다가온 어려움들이 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그 어려움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입니다.
기도를 시작할 때 시편기자는 자기 삶의 문제에만 집중했지만 기도하는 동한 하나님께로 시선이 옮겨졌으며 마침내 하나님이 영광받으실까 하는 사명을 바라보았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힘이고 기도하는 자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기도 가운데 우리와 깊은 교제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문제들이 기회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현장으로 만들고자 하십니다.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고 임재를 경험하는 기도가 넘치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